따뜻한 바람이 부는 날
가을이 깊어지면서 바람이 점차 차가워졌다. 하지만 여전히 오후의 햇살은 따스하고, 하늘은 맑다. 가을의 전형적인 날씨가 계속될 때마다 나는 늘 그날의 햇살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싶어진다. 하루의 일과가 끝난 후, 나는 자주 작은 산책을 한다. 산책을 하는 동안, 나는 이 순간을 누리며 나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. 그때마다, 나는 세상의 모든 것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진다.
산책을 하면서, 나는 가끔 지나친 사람들의 얼굴에서 잠깐 스치는 표정을 본다. 그 표정들은 대부분 바쁜 일상에 시달리며 마음의 여유를 잃은 사람들의 표정 같다. 얼굴에 담긴 고단함과 서두름을 보면 마음이 아프기도 한다. 나는 그런 표정을 볼 때마다, ‘나도 저렇게 살아가고 있지 않나?’라는 생각이 든다. 일상이란 누구에게나 반복되는 고된 일들이지만, 그 안에서 조금만 숨을 돌리고 잠시 멈춰 서면 내가 본질적으로 원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게 된다. 그런 깨달음이 늘 산책 중에 나를 찾아온다.
그날도 나는 일상을 잠시 잊고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. 처음에는 길게 걷고 싶었다.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걸음을 멈추고 잠시 앉아 있는 것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. 공원 한켠에 놓인 오래된 벤치에 앉아 하늘을 보며 숨을 고르니, 지나가는 바람과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만이 내 귀를 간지럽혔다. 그 소리들이 무언가 내 안에 숨어 있던 감정을 풀어내는 듯했다.
내가 앉아 있던 벤치 옆에는 한 여성이 어린 아이와 함께 앉아 있었다. 아이는 아직 어린 나이였지만, 그날은 유난히 조용히 앉아 있었다. 그 모습을 보니 어릴 적 나와 엄마와 함께한 순간들이 떠올랐다. 나는 그때 엄마와 함께 산책을 많이 했다. 나무가 늘어선 길을 따라 걸으며, 나무의 잎사귀를 따서 서로 나누고, 작은 꽃을 주고받으며 길을 걸었다. 그 당시 나의 마음은 참 순수하고, 매일이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다. 하지만 그 순수한 마음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변하고 말았다. 어른이 되어가면서 나는 더 이상 그때처럼 세상의 모든 것이 아름답고, 특별하다고 느끼지 않게 되었다.
그때 나는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. 나는 왜 예전처럼 세상을 그렇게 맑고 따뜻하게 보지 못할까? 그 이유는 아마도 나 자신이 너무 많은 것에 의심을 품고, 너무 많은 걱정을 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. 아마도 나는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세상이 낯설고 무서운 곳이 되어버린 것 같다. 어린 시절의 나는 두려움이 없었고, 그저 세상은 놀라운 곳이라고 믿었을 것이다. 하지만 성인이 되면서 나는 점점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고, 그 생각들이 나를 짓누르게 되었다. 바람처럼 가볍게 흘러가는 삶을 살아가고 싶었지만, 현실은 늘 내게 여러 가지 문제를 안겨주었다.
그래서일까? 나는 이제 산책을 할 때마다 과거의 순수함을 조금이나마 다시 찾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. 어린 시절의 나는 세상이 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곳이 아니었음을 잘 알기에, 나는 그때의 나를 다시 찾고 싶다. 그러기 위해서라도 나는 가끔씩 이렇게 길을 걸으며, 조금은 더 나 자신을 놓아주려고 한다. 그래야만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서다.
이런 생각들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던 그 순간, 내 옆에 앉아 있던 아이가 나를 쳐다보았다. 그 작은 눈빛은 너무 순수하고 맑아서, 나는 잠시 그 아이의 시선 속에 빠져들었다. 아이는 무엇을 생각할까? 어린 아이의 눈에는 세상이 어떻게 보일까? 나는 아이의 시선에서 세상을 한 번 바라보았다. 그러고 보니, 정말로 세상은 아름답고, 특별한 곳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. 내가 알던 세상과 이 아이가 보는 세상은 같은 세상일지 모르지만, 그 아이에게는 세상 모든 것이 신기하고 기쁜 것일 테니까.
내가 놓쳤던 것들은 이처럼 바로 내 곁에 있었던 것들이다.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내 마음 속에 가득 차 있다는 것을, 그 순간에 나는 깨달았다. 세상이 어려워지고 복잡해지는 것이 아니라, 내가 그동안 세상을 너무 힘들게만 바라봤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.
그 후, 나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. 마음이 가벼워진 듯했다. 지나치게 걱정하며 살아가는 것보다, 순간순간의 소중함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 훨씬 더 행복한 삶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. 그렇게 나는 여전히 혼자 걷고 있었다. 하지만 이제 나는 세상의 아름다움이 나의 시선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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